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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라 카투만두 그리고 네팔

나흘간의 트레킹을 마치고 포카라.
거의 대부분 카페는 와이파이가 지원되는데.. 속도는 한국과 비교하여 상당히 느린편..
체력적으로 소진된 상태에 팅팅 부은 다리에 얼굴에 어디를 둘러볼 생각은 못하고..
근육통 약먹고 마사지 받고.. 숙소의 화장실 슬리퍼를 끌고 다니며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음악 듣기..



포카라의 거리에서 석류즙. 비위생적인건 알겠지만..
이아저씨는 나를 봉으로 아셨는지.. 과일까지 떠넘겼는데. 그 저 노란 사과는 아직도.. 우리집 냉장고에.. 그대로..

 2일간의 포카라의 휴식을 마치고.
 다시 카트만두로..



설산을 바로 옆에서 보기 위해서 막 뛰어가서 자리를 차지했으나..
방향을 잘못 알았다..T_T
내 발등을 찍고 싶었다는... 그 가까이에서의 장관을 못보다니.. 

카트만두 거리

넘 귀여운 아기..
난 역시 아가들에게 어필하는 외모 ㅋㅋ

참으로 팔자 좋은 소님.. 어찌나 유유자적인지..

 카드만두 타멜거리에서 다르바르 광장까지 걷기. 대략 1시간에서 2시간정도?
 다르바르 광장. 여긴 예전 네팔 왕궁 이었다고 한다..
 외국인들에게는 대략 한화로 5000원? 정도 받는다. 대단한 요금이라 할수 있다..
 가트( 화장터) 는 그보다 더 비싸다고...





양식은 흰두교와 불교가 결합되어 있는것과 같은 건축 양식..

실은 난 사두와 걸인은 구분을 못하겠다.. 나보고 와보라고 손짓 하던데 그냥 줄행랑  
여긴 쿠마리 사원.
쿠마리란 일종의 "살아있는여신"이란 뜻인데..
3~4살된 여아중 수십가지 요건의 조건을 만족한 여아를 선별하여 여신으로 숭배한다고..
선발되기 위해서는 죽은 말.. 죽은 동물의 시체와 피가 낭자한 방에서 울지 않고 견뎌야 하는등의
테스트등을 거치고..선발된 쿠마리는 타인과 말을 섞을 수도 없고.. 학교를 다닐수도 없다고 한다..

그 여신이 초경이 시작되는 순간.. 그녀의 쿠마리로서의 위치는 박탈 당한다고 한다..
쿠마리 사원안에서 네팔인들은 쿠마리를 볼수 있지만.
외국인들은 쿠마리를 보는 것은 금지 되더라..

여신으로 숭배 받던 여자를 감히 어떤 남자가 아내로 맞이 하겠는가..
게다가 쿠마리와 결혼한 남자는 명이 짧다고.. 
그래서 그녀들에게 결혼은 금지되지는 않았지만.
거의 독신으로 평생 으로 일부는 창녀촌으로 흘러들어가기도 했다고
비운의 삶을 살게 된다는.. (요새는 그나마 그렇지 않다고...)

일종의 아동학대.. 여성학대 또는 악습..
가장 부모의 사랑을 받아야 할 어린 나이에... 슬픈 전통이다..





 여행자들에게 유명한.. 스노우맨 카페 여기 카레멜 케익이 유명..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던데. 달달한걸 별루 좋아하지 않아서 인가.. 그닥..
밖에서 보았던 네팔과는 확연히 다른 네팔의 신세대들의 모습을 볼수 있던 카페..

다르바르 광장을 거쳐.. 어선 쵸크 안드라 쵸크 (시장)
생생한 그들 삶의 모습들..





너무 짧은 일주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한국행 비행기가 이륙을 하면서..
왠지 설명하지 못할 그런 느낌이 나를 휘감았다..

자연 그리고 그 여정에서 만난 사람들로..  내 기억속 수채화 같은 추억을 남긴 일주일.. 
내 머릿속을 그저 두고온 신라면 걱정만으로 족하게 만들었던 대자연, 네팔..


비행기 안에서 보는 에베레스트..
머가 산이고 머가 구름인지..

언제가 될까..
하지만 반드시..
유화 같은 추억을 만들날이 언젠가는 오겠지? ^___________^





그리고 my favorites "That's The Way Of The World" - Earth, Wind & Fire
음악은 가끔 자주 듣던 과거의 그때를 연상하게 한다..
아마도 이 노래는 들을때 마다 이떄의 이시간을 떠오르게 할듯 하다..


간드룩에서 다시 나야풀 까지 네팔


간드륵으로 가면서.. 마챠푸츠레 봉우리..
마챠푸츠레는.. 단 한번도.. 정복되지 않는 산이란다..
등반하는 모든 사람들은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산..
왠지 한 성깔 해보이는 그런 산이다..



간드륵에 도착
간드륵의 어떤 집

이런 동네에 살면 ... 어떨까..
한달만 살아보고 싶다..


어딘가 가시는 할머니 뒷모습



우리나라 보다(?) 더 산이 많은 네팔
계단식 논.. 들이 상당하다..
해발 수천 미터 이상에도 동네가 있고..
3천 미터 정도까지도 농사를 지어야 한단다..
트레킹 역시 그냥 산을 오르는게 아니라. 돌아 돌아 굽이 굽이 그 산속 마을을
거쳐 거쳐 간다..



간드룩이 맞은편 동네..
그 이름은 란드룩 이란다..
대칭으로
간드룩.. 란드룩..ㅋ

롯지에서 만난 아이들..
이 아이는.. 카메라를 아는듯한 녀석이다..
카메라 렌즈를 응시 하는법은 없다.
그런데 본인이 사진찍히는건  알고 있다..
그래서 와서 확인한다..ㅋㅋ
웃긴 녀석..
나중에 크면 모델을 할라나? ^_^





다른 아이들도 샘이 나서.. 와서 찍어 달라고들
폴라로이드를 가져와서 찍어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와중에서도 끝까지 카메라는 안보는 녀석~ 징한 녀석 같으니.ㅋ
너도 혹시 나같이 쑥쓰러운거니? 렌즈 쳐다보는게? ㅋㅋ




그리고 눈물나게 부러웠던 부녀..
아빠와 손 잡고 발랄하게 걸어가던.. 소녀..
이 아이는 얼마나 살면서 앞으로 아버지와 행복한 기억을 안고 살아갈까..
눈물 날 정도로 부러웠다..

징하게 걷고 걸어.. 나야풀 도착..
지금 흐르는 강(?) 하천(?)은 아마도 만년설이 녹아서 흐르는 물일것이다..
언제쯤 다시 올수 있을까..

기약 없으나..

TIP 간드룩을 거쳐서 하산하는 길은  그늘이 거의 없는 직사 광선의 습격
챙이 넓은 모자나 반드시 얼굴을 칭칭 동여 매든지 해야 할듯함..
얼굴은 이날 다 탔음..
내 경우는 거의 코에 화상 입을뻔함.. -_T




저멀리 보이는 포카라 페화호수..
대관령에서 강릉을 보는것 같다 ( 대관령에서 강릉이 이렇게 보이던가? ㅋㅋ )
이렇게 나흘간의 트레킹을 끝내다...


고라파니 - 타다파니 네팔

푼힐전망대에서 내려와서 다시 고라파니 숙소로..
이제 떠날준비..
높은 지대 여서 그런가 이곳은 딱 초겨울 느낌이다.
사람들도 겨울 파커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고. 롯지에는 난로들도.


오늘의 여정은 번타티를 거쳐  다타파니로.
새벽 푼힐을 다녀와서 그런가. 너무나 힘든 오르막..
다들 어렵다는 울레리 계단길보다.. 난 고라파니에서 시작하는 산길이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계속 긴딩에게 " 몇시간 걸린다구? 머 ??  아까전에도 3시간 이라며.. 머냐?  " 짜증도 내고..
하지만 다시 뒤를 보며 아래와 같은 장관을 보면.
피로는 날라가고..

정말 반지의 제왕에서 절대 반지를 찾아 헤매는 프로도가 이런 여정을 지나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장관..


힘든길을 올라 올라 도착한 롯지

날을 다시 비구름을 덮히기 시작하고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타다파니 롯지에 도착..
 이곳은 ABC 베이스캠프 트래킹을 하는 사람들과 푼힐 코스를 하는 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지점이라.
 빨리 서두르지 않으면 방이 없는. 역시.. 쉬엄 쉬엄 가다보니..방이 없었다는..
 팀끼리 온 중국 아이들은.. 날다람쥐 같은 여자애한명이 먼저 날라가서 방을 잡아놓고 있던데..
 나야 그럴수 없으니.
 항상 트래킹을 하다 마주치는 좌측에 계시는 유럽 할머님들..
 
 젊은 나도 허걱 대며.. 비맞고 와서 젖어 몰골이 개판 오븐전인데..
 저 할머님들은.. 어찌된게. 나보다 먼저 오셔서.. 단아하고 정갈한 표정으로 우아하게 담소를 나누시며 밀크티를
 드시고 계신다..꼭 여기가 히말라야가 아니라.. 유럽의 어느 카페 인듯이..
 마주치면 너무 우아한 웃음으로 대해주시고.
 
 이번 트래킹에서 느낀건.. 체력과 나이는 비례하지 않는거 같다는 점.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보다는 나이드신 분들이 의외로 꽤 많더라..
 머리 히끗한 할머니중에 혼자 오시는 분들도 계시다는..
 나도 저렇게 나이 들어야지.. 하는 다짐..
 
나중에 얘기 들어보니.. 중간에 하다가 포기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거의다 젊은 사람들 이란다..-_-;;

방이 없으니 한시간 더 가서.
안개가 자욱한 산속..을 한시간


도착한 롯지.
오늘이 히말라야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
롯지의 손님은 우리뿐.

부모님들은 롯지를 운영하시고.. 포카라에서 공부 하는 삼형제는 지금이 명절이라 집으로 왔다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수시간 버스타고..기차타고 내려서 산을 넘고 넘어 타야 집으로 올수 있다는....
그래서 인가. 네팔의 명절은 한달이란다..-_-;;

롯지의 막내 아들.. 영어도 꽤 하고.
핸드폰의 음악을 들으면서 기타도 연주 한다..
꿈이 혹시 기타리스트? 하니 수줍게 그렇다고...

핸드폰 충전도 떨어져서 음악도 들을수 없고..
춥고. 맥주나 먹고 자야지.. 두병이나...

롯지의 긴밤이 지나  날이 밝고..
롯지 딸내미들..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는 아저씨.


푼힐전망대 네팔

우기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트래킹 내내 오후 부터는  비가 내렸다.
푼힐 전망대로 가는 고라파니의 새벽은..
거센 비소리에 깰정도로 폭우가 몰아쳤다.
심지어는 켜둔 전등도 나가 정전이 될정도로..
약간의 불면증에 혼자서는 무서워서 불을 끄고는 잠을 자지를 못하는 내게
트래킹 내내 기나긴 밤은 가장 불편하고 힘들었던..

창문밖에 모습은 비구름에 가려 아무런 시야도 확보되지 않고 있었다.



물론..네팔 여행의 목적이 안나푸르나,  설산을 보기 위해 온 여행은 결코 아니었지만.
트레킹을 하게 되었고. 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으니..
어찌 욕심이 안날수 있으랴
見山生心

제발 보여달라고 누군가에게 투정이라도 부리고 싶은 마음...

새벽 4시 푼힐을 올라 일출을 보기로 했지만. 계획은 무산되고.
6시에.. 긴딩이 왠지 볼수 있을거 같다며 준비 하라고 한다..
새벽 내내 들이친 비구름에 시야는 확보되지 못하다가.
구름에 가려진 설산은 다행히  조금씩 약올리듯이
그 모습을 살짝 보였다 감췄다를 반복한다..

하나하나씩 설산이 가리워진 구름에서 벗어나 그 위용을 스리 슬쩍 보일때마다.
거대한 설인이라도 만난것 같은 그 압도되는 느낌에 흠찟 놀라기도 하면서.

고라파니에서 푼힐까지는 왕복 2시간 정도.. 경사길..
올라가며 계속 뒤를 바라보며

"저리 비키란 말이얏!!" 하며 저 산에 덮힌 구름을 손으로 걷어 버리는 시늉
"후후" 입으로 부는 시늉을 하면서





푼힐의 높이는 3200 미터 정도.
전날 잠을 설쳐서 인지..
아니면 지대가 급 높아져서 인지 한발자욱 한발자욱이 힙겹다..
푼힐 정도에서는 고산병이 왔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양상이 달라지고 구름도 많이 걷히면서
날도 맑기 시작한다 역시나. 높은 지대라 기상 변화가 매우 시시각각..

유난히 힘든 나는
" 더 안봐도 될거 같어. 난 여기서 만족해..
머 저기가면 더 보이냐? 난 이걸로 만족할수 있을거 같은데!!! 응??.."

하니.하면 긴딩은.. 조금만 더 올라가면 파노라마 처럼 볼수 있다며..천천히 10분 가시고 5분 쉬세요..
하고 내 페이스 조절까지..

안가면 본인도 편할텐데..

안나푸르나의 아우라..
그냥 산이 산이 아니라 먼가 강한 기가

사진발 정말 작렬..
신이시여 .. 정말 제가 찍은 사진 맞습니까? ㅋㅋ





푼힐 전망대에  해발 3210 미터..
알프스 라면 이런 정도 뷰는 어쩌면 편히 앉아서 오를수 있는 그런

긴딩에게 여기도 그렇게 올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
그렇게 하면 좋겠다고 하자..
그럼  여기서 롯지 하는 사람들은 그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사나요..

그래.. 하긴 그렇다..

설산을 보고 있노라니
전에는 절대 이해 하지 못했던..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고 만년설의 고산들을 정복하려는 전문 산악인들이 조금 이해가 가더라.

그러기에.. 저곳은 지구상에서 인간이 가장 도달하기 어려운 ..
자신의 모든걸 저곳에 건 그중에서도 선택된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허락되는곳..

언제가 될지 알수 없으나..
그 다음기회에는 좀 더 가까이 가보고 싶은 바램..







먼가 여유로와 보이는 내 사진을 보니 솔직히 양심에 좀 찔린다.
실상은 간신히 허덕이며 거의 끌려올라가다 시피 헀는데.. -_-;;
한마디로 저 여유로움은 가증이며 사기.. 양심선언..ㅋㅋ


 
TIP 단지 안나푸르나의 설산을 보기 위한것이 목적이라면
 나흘간 또는 일주일 이상의 트래킹을 반드시 할 필요는 없다.
 설산의 일몰 및 일출을 멋지게 감상할수 있는 포인트중에 차로 올라갈수 있는 코스도 있음.
 ex) 사랑곶 그리고 포카라의 비행기 안에서도 운만 좋다면 바로 옆에서 보는것 처럼 감상할수 있음..


디케둥가 - 울레리 - 고라파니 네팔

디케둥가의 아침..
전날 비가 와서 그런지.. 안개가 낀.. 아침..

아침 식사를 하는 긴딩.
이곳 롯지의 주방장은.. 음식 하는 속도가 느린 소녀 주방장이라 그런지.
수시간전에 예약. 그리고 특히 아침은.. 그전날 저녁에 예약을 해두어야 하는데.
전날.. 괜히 오믈렛 한개만 주문해서. 아침에 일어나서 메뉴를 바꾸었더니 안된다더라..

긴딩은.. 네팔 라면을..
달랑 오믈렛 하나에  기별도 안가  배고픈 나는.. 계속
속으로 ' 야.!. 넌 진짜 어른한테 한번 먹어보라는 말도 말도 안하냐? =_= " 

트래킹 동안 내 머리의 팔할은 다른게 아니라 바로 "라면"이 차지 
아마 뇌구조를 그린다면  라면.. 커피 믹스. 김치...
그 이후에도 계속되는 라면에의 집착과 집념...

담엔 꼭!! 챙겨 갈꺼얏!!



길을 나서면서 만난 모녀..
아침에 일어나서 딸내미의 머리를 빗겨주는 엄마와 그딸의 모습이 너무 이뻐서.
사진좀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고..

저 여자 아이는 얼마나 영민한지..
동네친구 동생들도 같이 찍어 달라고 하는데.. 포즈까지 지도 편달 하더라..
여기 앉아.. 또는 이렇게 서있어봐.. 저거 봐.. 하면서.. 아마도 .. 그런말을 했을듯..


붉은빛의 대문이 있는 집.

디케둥가에서 울레리 까지 가는 코스는 그늘도 없이 계속 오르는 급 경사 코스..
이 코스는 이 트레킹에서도 가장 악명높은코스..
급경사.. 계단.. 이 근 4시간 이상 이어지는..
하지만. 60 훌쩍 넘은 노부부도 천천히.. 천천히 꾸준히 올라오시더라..
하지만.. 뒤를 돌아보면.. 보이는 탁 트이는 시야.. 그 시야를 보면 다리에 힘이

중간 중간 쉬면서..
긴딩에게.. " 나 힘들어서 쉬는거 아냐.. 천천히 보면서 갈라고 그래.." 물론 이때까지는 그랬다..

이것은 이곳의 산사태로 죽은 많은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비석..

트레킹의 급경사에서도 집은 있다..
그 집에 사는 아이들..

간간히 보이는 안나푸르나..
저 멀리 좀더 올라가면 더 잘 보이겠지?
힘들고 지칠때 희한하게 보이는 설산의 모습은 힘을 불끈 솟게 하는 먼가가 있더라..

단지 설산은 눈덮인 설산이 아니라.. 먼가의 강한 아우라가 느껴지는..

네팔 트레킹이 힘들면서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건..
간간히 힘들때 뒤를 보면 옆을 보면 나오는..
멋진 자연 경관... 그런 경관을 보면서 힘든것도 잊게 되는..



여행길에서 만난 한국 분들..
남편분은 같이 하는 동행하시는 가족분들보다 훨씬 일찍 올라 오셔서..
왜 이리 늦게 올라오냐고 부인 되는분을 탓하는중..
부인되시는분.. "아니 왜이렇게 혼자서 말도 안하고 먼저 올라가고 그래? "
한국 남자들.. 와이프랑 산에 가면 꼭 이런다.. ( 울 남편도 예외 아님.. -_-;;)




급경사라 쉽지는 않지만.
간간히 보이는.. 경관은  보면서
참 잘~ 온거 같다고 되내이면서..





그리고 나를 반겨주는 아이들 ... ^_^
역시 아가들에게 확실히  어필하는 외모.. ㅋㅋ



트레킹 중간에서 만나는 포터들..
대략 수십킬로 이상되는 무게를 지고..
험난한 산중을 오르락 내리는.. 그들에게 제대로된 등산화는 커녕..
가벼운 샌들 뿐..

히말라야에서 나고 자란 포터들에게 어쩌면 히말라야는 가혹한 삶의 전쟁터 일지도  모른다..
가끔씩 마주치는 그들의 몸짓보다 더 커보이는 짐을 진 그들의 지친 표정을 볼때는 머라 설명할수 없는 그런 느낌이...
외지인들이 히말라야를 즐기는 동안 그들은..
가혹한 짐을 지고..외지인들이 히말라야를 보다 편하게 즐기기 위한 인프라의 하나인것이 현실이다..
언제쯤.. 그들은 그들의 히말라야를 즐길수 있을까..

그 미래는  왠지 너무 먼거 같다는.....................


산을 두번 넘어 도착한 고라파니.롯지.
고라파니로 오니 갑자기 겨울이다
사람들은 겨울 파커를 입고..
난로가에 옹기종기 앉아서..

롯지에 있던 소녀..
참 똘똘하니 이쁘게 생긴 소녀였는데..
사진발은 참~ 안받는구나..



트래킹 1일차 나야풀- 디케둥가. 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푼힐 전망대 코스의 트래킹은 4일 코스
베이스 캠프 까지 가는 ABC ,MBC 코스 까지이고. 이경우는 대략 9일이라고 함.
설산을 등반한다거나 하는건 아니다.
그외에도 다양한 경로의 코스들이 있으나. 내가 만난 대부분은 푼힐 아니면 ABC 베이스 캠프 두가지
가 가장 많았다..
단지 앞의 히말라야 산맥의 주요 설산들을 파노라처럼 볼수 있는 가장 멋진 뷰를 볼수 있는 지점까지의
트레킹 코스로 볼수 있고.. 성수는 4~5월 10~11월 이라고 함..

내가 진행한 코스는 푼힐 전망대 코스
1.나야풀 - 디케둥가
2.디케둥가 - 울레리 - 고라파니
3.고라파니- 새벽 푼힐 전망대 - 고라파니 - 번타티- 다타파니
4.다파파니 -  간드륵- 나야풀

의 나흘간 코스.

3000미터 고지를 오르는것이기 떄문에 소문처럼 ( 대체 누가낸 소문이야? -_-  아마도 지리산쯤은 쉽게 날라다니는 날다람쥐? )
쉬~운 코스는 아니다..
오히려 베이스캠프를 찍는 ABC보다 어렵다고 한다.
지리산이나 설악산이나 한국 산과 유사한 지형들도 있다..
단지  한국 산행처럼. 빨리 빨리~는  히말라야선 상상도 할수 없는일! ㅋㅋ
천천히 갈수 있고.. 또 가는것이 기본 정석이기에 누구나 다 할수 있다는..
그건 중간에 마을의 롯지들이 많기에.. 중간에 충분히 쉬면서 페이스를
조절할수 있기 때문...
의외로 연로하신 분들이 많은..
특히 서양 할머니중에서는 혼자 오신분들도.. 

붉은색 아우트라인이 4일동안의 내가 가야할 코스

나야풀에서 시작한 초입
동네 아이들은 손꼽장난 하고 있고..

공항에서 만난 쉘파 긴딩..
여자 혼자 하는 트래킹이라 여자 쉘파를 원했는데 없단다..
그래서 혹시 느끼한 남자 쉘파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는데..
선하고 순수한 인상의 시골 청년 긴딩..
한국 말도 꽤 잘하고.. 에베레스트 자락의 마깔루 산 해발 3000미터에서
나고 자란 순수 청년( 알고보니 아이 아빠더라는..)

그의 배낭은 오윤선씨가 준.. 배낭이라고.
그는 오윤선씨나.. 엄홍길씨의 원정 등반에 셀파로도 수차례 함께한
그래서 전문 등반에 대한 얘기들을 많이 들을수 있었다..

진짜 여행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만날수 있는 여행이라는게
내 여행에 대한 내 개똥 철학.. 그렇게 볼때.. 이렇게 짧은 여행기간에서 긴딩과의
인연은 참 소중한.. 
트래킹 내내.. 누나 처럼 나를 챙겨준...


나야풀의 교회.. 기독교가 완전 비주류인 네팔에서의 교회라..
다 쓰러져 가는.. 부자 한국 교회와.. 비교 되는구나..
아마도 네팔에 와서도. 선교를 해야 할듯.. 
부자 교회 살찌우는 대신에 이런 쓰러져가는 교회에 지원을 해주는건 어떨지....

초입 부터의 롯지들..
의외로 네팔이니 인도니.. 대도시는 참 비 위생적인데
속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거리니 동네니.. 오히려  깔끔 하다..

돌길을 올라 올라 가는 길..

롯지에서의 점심 식사..
인도의 탈리와 비슷한.. 네팔의 달맛..
식판에 쌀.. 그리고 커리 그리고 짱아찌 같은것들이 곁을여져 나온다.
여행을 하면 완전 현지에 적응을 잘하는 특별히 음식은..
계속 달밧 위주로 식사를 ..

모자의 뒷모습..

비가 오기 시작하고..
히말라야 트래킹 내내 낮에는 3일동안 비가 왔다.
긴딩에 말에 의하면 명절 기간내에 잡는 염소의 살육 때문에 내리는 비라는.. ^_^



동네 아이들..  폴라로이드를 가져갈걸..
어찌 알았는지 네팔의 아이들도 사진을 찍으면 다시 와서 확인을 한다.
본인이 사진기에 어떻게 담겼는지 궁금해 하면서 신기 해 하면서.
다음번엔 폴라로이드를 가져가서 그걸 선물해주면 좋겠다 싶다..

도착한 디케둥가의 롯지..
오늘밤은 여기서..
디케둥가 롯지의 부엌 모습.

롯지에 사는 소녀에게 한 여행객 할머니는.. 이쁘게 치장을 해주고.

5시 정도에 목적지에 도착.. 기나긴밤..
에베레스트 맥주 한잔과 론리플래닛 네팔 읽기..

책좀 가져갈걸..
부족한 준비로 여행 내내 스스로를 차책하며......
나중에는 꼭 멀멀 멀.. 가져올꺼야 하면서..
머리속엔.. 신라면 신라면.. 신라면 커피믹스 등등등 이 뭉개 뭉개 가득차고..... 
나중에 다시 오게 되면 닭발 곱창도 싸올 기세...

그래서인지 여정에서 만난 트래커중에 내 짐처럼 단촐한 사람을 그닥 많이 없더라..
느무 안챙겨 갔다는...


네팔 도착 - 트레킹 시작. 네팔

가끔씩.. 네팔 인도.. 그리고 등등.
" 왜 넌 그런나라들을 좋아하니? " 하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수일간의 기차 또는 버스 타고  먼지를 뒤집어 쓰고, 현지인들과 부딪히며
힘들게 찾아간 내게 그런 힘든 여정의 고달픔을 한번에 날리게 해주는
참으로 " 아름다운 "무언가" 를 보게 해준 기억이 많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인식속에 있는 그저 가난하고 비위생적인 편견속의 그곳이라면..
그 누가 엄두를 낼까..

못되쳐먹은 성격땜에 생긴 편두통과 디폴트로 구겨진 얼굴이  내가 봐도 너무 싫은 어느날.
무작정 결심한 여행 .
그야말로 간신히 일주일간의 휴가를 얻어 네팔로 비행기 티켓만 끊어 떠난 여행..

네팔은 언젠가는 가보게 될것이라는 그냥 그런 예감이 있었다.
왠지는 몰라도 그냥 그런 느낌..

과연 세계에서 가장 높은 14좌중에 10개가 있다는 네팔.. (그외에는 티벳) 상공..
역시나 산이 먼저 반기는 그곳. 그 높은 산등성위엔 오밀조밀길이 있고 사람들이 모여사는 마을의 모습이 보인다..
( 이때는 저런 산의 마을들을 내발로 헤메고 다닐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남일 처럼 아무 생각없이 바라보기 -_-;; 저런데를 내가 다녀야 돼? 의식햇다면 아마 몸살기가 더 심해졌을듯.)



직항을 타면 6시간이면 도착 하는 그곳 카트만두.
타멜거리. 흡사 우리나라 이태원 또는 배낭여행자들의 천국이라는 방콕의 카오산을 연상 시키는곳.
여행자들을 위한 거리.. 기념품 가게 카페, 대부분 와이파이가 잡히고..^_^
하루에도 수시간 동안은 전력을 차단하는 나라에서 길거리에서도 와이파이가 잡히는 경우가 있다는
참으로 대단 ( 머 이경우는 관리상의 허술이지만도.. ^_^ )


출출해서 들어간 식당
모모라는 네팔 음식. 외양은 한국의 만두와 똑같다.
맛도 비슷 하지만 좀더 강한맛..


카트만두에서 묵었던 한국 숙소.
오00씨의 원정을 담당했던 에이젼시. 그리하여 스브스에 대한 좋지 않는 감정을 가지고 계신다는 사장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만 가던 그녀. 천부적인 산악인의 체력 조건과 무산소 등정에도.. 끄덕없는
재능을 가지고 있던 대단한 산악인으로서의 그녀를 옹호하고 그녀의 편이 되어줄 사람이 없었다는것은
현재의 그녀의 일종의 도덕적 몰락의 원인인듯..

그말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다.
" 과정 자체를 즐기지 못하면 그건 기능인에 불과해  "



다음날 국내선을 타고 카트만두 - 포카라  참으로 아담한 포카라 공항.
안나푸르나 트레킹이 시작되는곳.

네팔 국내 항공 yeti  발음은 귀여운데.. 뜻은 사람도 잡아먹는 히말라야 설인이라는뜻 ㅋ
35인승의 소형 비행기. 비행기의 문을 스튜디어디스가 열고 닫음 ^_^
날씨가 좋으면 안나프루나의 설산을 거의 옆에서 보듯이 볼수 있는데..
뛰어가.. 자리를 차지 하고 앉았으나..  날이 흐린 관계로 보지 못했다는...
( 게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도 뛰어가 창가 자리를 차지하고 꿰차고 앉았으나.
 푸르나가 보이는 반대 방향. 무식하게 뛰어가기만 하면 머하냐고 방향을 파악했어야지..T_T)

TIP 여하간 포카라에서 카트만두에서 올때는 반드시 출입구가 있는 창가 방향쪽으로 앉을것.
날씨만 좋으면 바로 설산의 멋진 광경을 바로 옆에서 보듯이 즐길수 있다.

 포카라에서 트레킹이 시작하는 나야풀로 이동중.
 나야풀까지는 택시로 2시간 이동..
 간간히 보이는 저멀리 안나푸르나 설산의 모습..
 먼가 다른곳과 달리 저곳에만 스포트 라이트를 비추어지는 그런 느낌..



TIP : 

시간여유가 없는 직딩의 경우는 가격이 좀 세긴 하지만 직항(대한항공/ 아시아나는 없음)을 권한다.
타이 항공이나 캐세이퍼시픽의 경우 가격 경쟁력이 있긴하지만. 중간에 방콕을 경유 해야 하고.
때에 따라서는 방콕 시내에서 하루 정도 체류 해야 할수도 있다. 물론. 시간 여유가 많거나.
방콕 여행을 그 김에 할수 있는 경우라면 추천할만함..

네팔의 경우 여행 루트나..트래킹 루트가 정형화되어 있고
두가지 코스의 한국 여행자에겐 대중적 일반적이지 않나 싶다.
 - 푼힐 트레킹 코스 (4일) 
 - ABC  베이스 캠프 코스 ( 8-10일)

보통 에베레스트 트레킹은 약간은 매니아적인 코스
안나푸르나는 수채화.. 에베레스트는 유화 같다는 표현도 ^_^

직딩의 경우 시간도 없고 그리하여 여행 준비도 못한경우
네팔내의 트레킹 전문 여행사를 통하면 여행 준비의 시간은 절약 할수 있다.
물론 비용은 더 들수 밖에 없음.
(포카라 국내선 예약  및 히말라야 트레킹 허가증 ( 국립공원 입장료$28 +  트레킹 허가증(TIMS  카드) $10 ) 관련 예약
- 카트만두나 포카라에서 사전 발급 받아야함. )

네팔에서의 편지 네팔

네팔은

언젠가는 꼭 가봐야 겠다고 생각했던곳.
예전 여행기를 문득 보다 보니..

7년전 혼자 떠났던 배낭여행에서 만나서
라오스에 동행했던 은정 언니..

은정 언니의 네팔에서의 편지가 있다.

http://karisina.egloos.com/97252

생각해보니 내 블로그는 IT니.. 미디어니.. 조직이지..
등등이 아니라 아직도 이름은 인도차이나 일기..

돌아오면 다시 인도차이나 일기를 다시 써내려가야 겠다..


향후 10년 안에 TV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출처 http://spacec.egloos.com/1041060 


주 제: 향후 10년 안에 TV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과 목: 방송환경의 변화와 미래

담당교수: 강 남 준님

제 출 자: 강 철 원(ID: 4061002)

연 락 처: kangchul@ytn.co.kr 010-4842-2710

제 출 일: 2007.06.18

 


1. NETWORK TV는 10년 안에 사라진다?


Google은 2004년 말에 뉴스의 미래를 다룬 ‘EPIC 2014’라는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구글이

뉴스전쟁에서 최종승자가 된다는 내용이다. 2008년에 Google과 Amazon이 합병해

Googlezone을 만들고 NY Times의 모든 콘텐츠가 GoogleZon의 Indexing Computer에

오픈된다. NY TIMES가 GoogleZon을 저작권 법 위반으로 고소하지만 Google의 완벽한

승리로 끝난다. 2014년에는 구글뉴스에 대항하던 유일한 인쇄매체인 NYT가 오프라인 매체

로 전락하고 제 4부라는 언론은 사라진다고 밝혔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구글뉴스에 대항하는 것으로 인쇄매체인 NYT를 상정했지만

NETWORK TV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또 올해 첨가된 ‘EPIC 2015’에서도 네트워크

TV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다. 그러면 네트워크 TV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구글이

벌이는 뉴스전쟁의 다음 상대는 네트워크 TV이고 네트워크 TV도 구글과의 전쟁에서

침몰해 제 4부인 언론은 완전히 소멸할 것인가?


2. 신문 ∙ 방송에서 뉴스가 사라진다

1) 왜 시청률이 급락하는가?

2005년 11월 미국의 네트워크 TV인 CBS, NBC, ABC는 모두 최신 방영된 인기 프 로그램을 방영 즉시 VOD로 직접 판매하기 시작했다. 즉, NBC는 “Law& Order: SUV" 를편당 99센트에 Yahoo VOD 서비스를 통해 판매했고 CBS는 ‘CSI'를 미국 최대 케이블 회사인 COMCAST VOD 서비스를 통해 99센트에 판매했다. ABC는 새로 론칭하는 iPod video service를 통해 ’Desperate Wives'를 편당 1.99$에 팔았다. 네트워크 TV가 인기 프로그램을 방영 즉시 VOD 서비스로 판매한 것은 네트워크 TV의 쇠락을 말해주는 사건이었다. 이같은 거래를 두고 CBS 부회장인 Martin Frank는 ‘NETWORK TV의 종말’이라고 말했다.

" It is a big deal...this is the end of network television as we know it..."

Business Week도 비슷한 시기 ‘TV의 종말'("The End of TV: As You Know it") 이라는

기사를 게재했다(2005. Dec.8). 이렇게 해서 이제 네트워크 TV의 종말은 공공연한 화두가

됐다. 네트워크 TV 퇴장의 조짐은 시청률 하락에서 비롯된다. 미국의 매체별 하루 이용시간

을 보면 TV의 경우 2000년 180분에서 2006년 135분으로 25% 줄어들었다. 그 대신 인터넷은

같은 기간 35분에서 80분으로 130% 증가했고, 케이블은 25분에서 75분으로 200% 증가했다.

시청률 하락은 대안 매체의 등장 때문으로 설명한다. 네트워크 TV의 시청률을 케이블과

인터넷이 빼앗아 갔다는 것이다. 그것은 일반적인 분석이고 타당한 것이지만 여기서는

정치뉴스의 몰락을 꼽고 싶다.

미국의 외교전문잡지 Foreign Policy는 2005년 9/10월호의 특집 “오늘 있지만 내일 없는 것“ 에서 2040년에 사라지는 것들 중에 가장 먼저 정당을 꼽았다. 영국문화원의

2020보고서, OECD 미래예측보고서에서는 수십 년 전부터 ‘2020 정당소멸’을 예측해왔다. 정당정치는 19세기말에 탄생한 것으로, 오늘날 첨단과학기술발전과 대중민주주의시대에는 그 강력하던 정치제도가 수명을 다한다는 것이다. 정당의 소멸이유는 가치관의 변화와 정치인의 신뢰도 저하다. 오늘날 좌냐, 우냐는 대립적인 가치관은 사라지고 개인에 따라 수 십개의 가치관이 공존하게 될만큼 사회구조가 복잡해졌다. 일테면 우파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 빈곤의 문제나 남북문제에 대해 진보적인 사고를 가질 수 있고 좌파적인 사람이 FTA 문제에 관해 시장경제나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입장에 설 수도 있는 것이다. 또 정당이라는 제도를 거치지 않고도 얼마든지 입법이 가능하다. 주민 직접 입법이라든지, NGO를 통한 입법이다. 대통령 후보도 정당을 통하지 않고 얼마든지 출마가 가능하다. 여기에다 정치인의 부정부패는 정당의 존립근거를 뿌리 채 흔들고 있는 것이다.

정당의 소멸 또는 소멸 조짐은 언론에게도 엄청난 영향을 준다. 전통적으로 방송과 신문의 뉴스는 정치기사가 핵심이었다. 그러나 이제 정치기사는 퇴장하고 그 자리는 생활정보 기사가 채워지고 있다. 정치기사와 정치부가 언론에서 핵심역할을 한 것은 전통적으로 정치권력이 그 사회를 움직이는 핵심이었고 언론도 이런 구조에 종속됐기 때문이다. 여기서 권언유착이 형성됐다. 언론사는 생존과 사업 확창을 위해 모든 역량을 정치부에 쏟아붙지 않을 수 없었다. 정치부가 언론기관의 로비창구였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사회구조와 가치관은 복잡, 다원화됐고 정치인은 불신받고 있다. 정치기사는 대중이 원치 않는다. 영국의 예를 들면 대처총리시대에 의회출입기자는 230명으로 늘고 정치기사도 늘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인디펜던트 가디안 등의 중립적인 정치기사도 팔리지 않아 국회출입기자들이 급감했다. 선진국에서는 미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정치면, 의회 면이 신문에서 사라졌다. 타블로이드 신문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정치를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언론자체의 경쟁도 정치기사의 퇴장을 부채질 하고 있다. 방송에서는 정치기사를 다루기는 하지만 정책문제가 아니라 스캔들, 갈등, 논쟁 거리를 흥미 위주로 보도한다. 신문에서는 방송에서 이미 보도한 정치뉴스를 다뤄봐야 경쟁력이 없고, 신문이 팔리지 않는다. 새로운 독자층인 신세대들은 "무거운" 정치기사를 완벽히 외면한다. 신문사는 앞으로 전문기자 1-2명만 있으면 정치기사를 커버할 수 있을 것이다. 방송사는 지금보다 50%의 기자만 있으면 정치 뉴스 수요를 충족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2) 블로그 저널리즘, 인터넷, 휴대폰이 언론의 역할을 대신하는가?

신문과 방송에서 정치뉴스가 사라지고 뉴스의 중심이 생활정보 중심으로 바뀌어간다면, 앞으로 누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언론의 기능을 대신할 것인가? 이같은 의문에 대해 언론학자들은 인터넷을 꼽고 있다. 정치기사가 궁금하면 사람들은 인터넷을 찾을 것이다. 또 기술의 발달로 뉴스 제공 소스가 다양해져 핸드폰의 정보전달 서비스가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뉴미디어, 즉 인터넷과 핸드폰이 의사전달의 기폭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 중에서 많은 언론학자들은 1인 미디어인 블로그의 영향력을 주목한다. 블로그는 web과 log의 합성어로 웹의 일기, 기록이다. blogger라고 블리는 저자 또는 편집자가 정기적으로 자신의 의견이나 경험, 정보를 올리는 미니 웹 페이지다. 개인의견을 올리지만 정보공유가 가능하고 댓글을 달 수 있어 공론장으로써의 기능을 한다. 블로그는 웹스터 사전이 뽑은 2004년도 ‘올해의 말’로 선정됐다. 또 한국형 블로그인 싸이월드는 ‘2004년 최대의 히트상품’으로 선정됐다.

블로그가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계기는 2003년 이라크 전쟁을 통해서다. 9.11 테러 때도 그렇지만 이라크 전쟁 때도 많은 사람들이 홈페이지나 커뮤니티를 통해서 전쟁에 관한 글을 올렸다. 그 중에서 ‘살람팍스(Salam Pax)’의 '라에드는 어디에?(Where is Raed?)'라는 이름의 블로그 사이트가 세계 언론을 주목을 받았다. 살람팍스'라는 필명의 블로거가 자신의 사이트(http://dear_raed.blogspot.com)에 생생한 바그다드의 일상을 기록한 것이다. “Where is Raed?"라는 블로그의 글은 침대에서 생산해내는 뉴스의 허구를 폭로하고 SNG를 이용한 기존매체의 속보전달 기술에 의구심을 제기했다. 부대의 이동을 따라다니면서 보도하는 이른바 embedded reporter의 허상이 드러난 것이다.

또 CNN 뉴스 본부장인 이슨 조던은 2005년 2월 다보스 포럼에서 비보도를 전제로 “이라크에서 미군이 현장의 기자들을 조준사격해 12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말했다가 이 발언이 참가자의 개인 블로그를 통해 공개되면서 사임했다. 다보스 포럼에 초대받은 미국의 의료기술 회사 경영자 로니 아보비츠가 그의 발언을 듣고 그 자리에서 증거를 요구했지만 조던은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아보비치는 이튿날 다보스 포럼 공식 블로그

(www.forumblog.org)에 "미군은 이라크의 기자들을 겨냥했는가?"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많은 청중들, 특히 아랍에서 온 사람들은 그의 말에 박수를 보내고 공공 장소에서 미국에 대해 그처럼 말한 그를 '아주 용감한 사람'이라고 불렀다. 나는 지금쯤 중동의 어딘가에서 그의 말이 아랍어 신문에 실려 '미국이 사악하고 부패한 나라'라는 증거로 쓰일 것으로 확신한다."

그의 글은 삽시간에 인터넷으로 번져갔다. 일부 네티즌들은 이번 사건을 '이슨 게이트(Eason Gate)'로 명명하고 동명의 웹사이트까지 개설했다. CNN과 조던 본부장은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고 해명했지만 성난 네티즌들의 공격을 감당할 수 없었고, 조던 본부장이 며칠만에 사임했다.

블로그가 주목받은 이유는 두가지다.

첫째, 가장 빠르게 소식을 전한다. 여러 매체 중에서 인터넷 홈페이지가 가장 빠르고, 그 중에서도 블로그가 가장 빠르다. 앤드루 설리번(andrew sullivan)이란 블로거는 2002년 1월 조지 부시 대통령이 연두교서를 발표한 지 33분 만에 1천 단어 분량의 분석 기사를 자신의 블로그(http://www.andrewsullivan.com)에 올려 큰 반향을 일으켰다.

둘째, 가장 정확하고 생생하게 사실과 감정을 전달한다. 블로그는 직설적이고 진솔하다.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쓰는 글이기 때문이다. 이라크 전쟁 당시 이라크인들은 바그다드의 현황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폭탄이 떨어지고 집이 무너지고 불안한 하루밤을 자신의 보고 느낀 사실과 감정 그대로 생생하게 전했다. 또 미국 군인 가족들은 자신들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군인 가족으로 각자가 보고 들으며 느낀 점을 적었다.

블로그 저널리즘은 이처럼 자신만의 경험이나 전문지식에 의해 뉴스가 생산되는 장점이 있는 반면 자칫 진실이 아니라 네티즌 다수의 힘인 넷심에 의해 여론이 형성되는 허점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3. TV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변화의 시나리오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이 라디오, 그리고 신문을 앞지른 것과 마찬가지로, 인터넷으로 전송되는 비디오 콘텐츠들이 방송을 추월해 갈 것이다. 그리고 광고 시장 역시 그에 맞게 변하면서 전통적인 비즈니스 모델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데이비드 큐리, Ofcom 회장


“궁극적으로 인터넷이 우리가 활동하게 될 가장 중요한 매체가 될 것이고, TV와 Radio를 전달할 주요 수단이 될 것이다.” -마크 톰슨, BBC 사장


1) 2015년 TV 산업의 3개 시나리오

유럽의 통신, 인터넷, 미디어 조사기관인 IDATE(Institut de l'Audiovisuel et des

Telecommunications en Europe)는 2005년도에 ‘유럽에서의 TV financing의 미래 (Television 2015 - The future of TV financing in Europe)’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서 ‘2015년 TV 산업의 3개 시나리오’를 상정했다.

시나리오 1: “TV anywhere, anytime"는 3G, DVB-H, 심지어 S-DMB 네트워크를 바탕에 둔 모바일 TV의 신속한 부상을 상정한다. 이 시나리오에서 모바일 TV는 풍부하고 잘 세분화돼 있다. 비록 몇몇 개인은 고용량의 하드 드라이브를 갖춘 포터블 TV를 선택할지라도 모바일 폰은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이용할 수 있는 여러 모바일 TV 서비스에 접속할 수 있다. 지상파 또는 위성 모바일 TV에 가입한 덕택에 그들은 방송되는 프로그램과 하드 드라이브에 저당된 녹화물을 이동중이거나 집에서 시청할 수 있다. TV는 특히 많은 시청자가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시간대의 장소에서 보다 쌍방향적이 된다.

비즈니스 모델은 어떤 급격한 방법으로도 변하지 않는다. TV 방송 그룹은 VOD 서비스를 하는 고정 또는 이동형 TV를 위한 위성 플랫폼을 운영한다. 반면 모바일 사업자들은 모바일 텔레콤 네트워크와 모바일 DTT 네트워크(실시간 방송)에 기반한 TV offers를 운영한다.

시나리오 2: “Welcome to the age of Egocasting”은 통신망에서의 peercasting을 거쳐 전 세계적인 대안 TV의 출현, 그리고 포터블 디지털 멀티미디어 플레이어의 광범위한 사용에 기반한 nomadic TV의 출현을 상정한다. 따라서 두 번째 시나리오의 출발점은 인터넷이 인구의 상당부분(45세 이하)이 선택하는 매체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온라인에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영화, 음악을 다운로드하고 포터블 멀티미디어 플레이어에서 콘텐츠를 소비한다. 통신망에서의 개인화된 TV 플랫폼이 증가한 덕택으로, 그들은 또한 자신들의 블로그나 v로그를 거쳐 콘텐츠 생산자가 된다.

진정한 ‘세계적인 대안 TV’의 출현으로 현재의 TV 비즈니스 모델은 심각하게 훼손된다. 정규 TV 채널은 시청자를 잃어간다. 이것은 PC 멀티미디어 센터를 통해 다운로드받은 VOD가 지배하는 것이다. 웹에서 peercasting을 거쳐 배분된 콘텐츠는 강력한 검색엔진을 작동시키는 인터넷 거물에 의해 모아진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저작권이 저자에게 있는 프로그램의 수요에 의해 소비가 이뤄지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광고가 들어오고 매우 개인화된다. 광고업자는 프로그램 접속 플랫폼에 자신들의 투자를 집중하고 고전적인 TV를 버린다.

시나리오 3: “ The reign of the top media brands "는 비선형 TV 소비의 부상을 목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주도적인 미디어 브랜드인 TV 포털 주위에 집결한다. 세 번째 시나리오의 출발 전제는 고정형 및 이동형 개인 비디오 레코드, 또는 PVR의 광범위한 사용이다. TV 프로그램이 넓게 선택되는 것은 월 가입자들에게 편 단위에 따라 이용할 수 있게 하고, 그래서 프로그램은 단 한 사람의 광고업자에 의해 스폰서된다. 중요한 변화는 TV 시청의 45%가 비선형이라는 사실에 있다. 이것은 TV 시청은 지연된 모드 또는 주문형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미디어 복합기업은 여전히 브랜드 네임을 가진 주도적인 TV 포털 주변에 스스로를 조직화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통신사업자와 인터넷 거물로부터의 잠재적인 위협을 가까스로 저지한다.


2) TV 사업자의 5대 전략

IDATE (Institut de l'Audiovisuel et des Telecommunications en Europe)는 2006년 보고서에서 방송산업의 구조변화를 이렇게 예측했다. TV시청은 선형에서 비선형 구조로 변화할 것이고 미래의 TV시청 행태는 개인화, 쌍방향성, 이동성으로 진화할 것이며 경쟁의 증대로 TV 시청 가격이 저렴해 질 것이다. 또TV산업의 위협 요인으로는 인터넷의 확산과 인터넷의 광고효과가 좋다는 점, 젊은 층(15세-24세)의 TV 시청이 감소하고 있는 점, 통신회사, 인터넷 회사 등이 비디오 시장으로 진입하고 있는 점을 꼽았다. TV 산업의 수익구조 변화도 예상했다. 미래 TV 채널에게는 다음과 같은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①과거에는 불가능 했던 쌍방향성을 이용해서 시청자와 직접적인 관계를 조성한다 ② TV 시간이 증가하고 있다(특히 이동 플랫폼으로 인해서) ③ IPTV, 3G 및 퍼스널 TV 등을 통해서 광고할 기회가 만들어지고 있다.

미래 채널 사업자와 TV 플랫폼 사업자에게는 ① 서비스의 고도화를 통해서 ARPU의 증가가 가능하다 ② 다양한 매체와 채널을 서비스함으로서 브랜드를 강화할 수 있다고 했다. 또 제작자들에게는 ① 콘텐츠의 가치가 상승한다(특히 생방송 프로그램) ② 채널 공급자과 광고주와 프로그램의 제작에서 새로운 협력 관계가 형성된다고 봤다.

결론적으로 TV 사업자에게는 다음과 같은 전략을 제시했다. ① 인터넷으로 진출해야 한다. ② 홈네트워크의 확산을 수용해야 한다. ③ 쌍방향성을 간과해서는 곤란하다. ④ PVR을 두려워하지 마라. ⑤ 이동TV시장을 개발하라.


3) 미래의 TV는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될 것이다

미래전문가들의 분석에 의하면 TV는 기본적으로 대중문화와 홍보 연예 회사를 모두 융합한 엔터데인먼트회사로 간다고 본다. 대중문화와 방송언론이 융합하게 되고, 언론 기본의 “여론 이끌기“ 역할은 소멸한다는 뜻이다. 방송언론의 미래사회에서의 생존전략은 대형 엔터테인먼트사로 가는 길이다. 현재 구멍가게처럼 운영되던 연예매니지먼트 회사가 대형화하고 미래 대중문화의 발전이 지속되어 언론이 대형연예회사와 합병하게 되면서 많은 소속연예인을 관리한다. 또 대형매니지먼트사들이 망해가는 언론사들을 인수하고 영화사와 언론사가 합병 협력하는 구조가 된다. 미래 신세대들의 여론몰이는 스타를 통해서만 가능해진다.

미국에서 1980년대 저녁뉴스에는 6천만대의 TV가 켜져서 뉴스를 들었지만 요즘은 2천5백만 3천만 대만 켜진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오락이나 대중문화 등의 채널로 눈을 돌렸고 정치인이 나오면 채널이 자동으로 돌아가 버렸다. 시장경제의 원칙에 따라 독자나 시청자가 원하는 뉴스를 생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인터넷 뉴스나 동영상이 발달해 개인화된 뉴스를 제공하고 정치나 정부뉴스에 전혀 관심이 없는 시청자들은 방에서 게임을 하거나 홈쇼핑채널을 보고 있다.

미래의 대중문화는 케이블, 컴퓨터, 전자제품, 통신, 대중문화가 하나로 융합되면서 대규모 시장을 형성한다. 헤아릴 수 없는 케이블 채널에다 슈퍼하이웨이를 통한 각종 정보와 게임, 영화를 실시간에 선택할 수 있다. 앞으로 전자제품이나 음악비디오, 비디오게임은 중앙데이타뱅크에 저장되고 가상현실 기기로 영화 속에 들어가서 실제로 체험하게 된다. 클린트이스트우드를 상대로 총질을 할 수도 있고 마릴린 몬로와 섹스를 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뉴스 공급은 인터넷이나 핸드폰 서비스가 맡게 되고 미래의 TV는 언터테인멘트사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끝)

네트워크, TV, 방송, TV시청률, 시나리오, I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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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10년후 TV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작성자 한착남
 


소중한 선물

트위터를 통해 류시화시인님으로 부터 시를 선물 받았다..
정말. 이런일도 있구나..

'팔로워와 팔로잉 수가 극심한 차이가 있지만 시인이기에 이중 잣대로 통과'시켜 주신 @
karisina님께 오늘의 시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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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에 상관없이, 우리 모두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내 폐에 들어갔던 공기가 조만간 새와 당신의 폐에 들어가듯이
 

두 사람은 / 자주 같은 순간에 눈을 떴다 / 그리고 무엇인가 이상한 듯 / 잠시 침묵 속에 정지해 있었다 / 시간 저편에서 어떤 것이 말을 걸어오는 듯 / 곁에 있으나 그 어디에도 없는


그 순간은 오래 가지 않았다 / 공중에 떨어진 새의 깃털처럼 / 두 사람은 / 그들이 사랑하는 혹은 사랑하지 않는 / 세계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그러나 아무 일도 없는 것이 아니었다 / 두 사람은 / 자주 자신이 현실 속에 부재하고 있음을 느꼈다 / 낮을 보지 못한 밤처럼 / 동행하며 동시에 동행하지 않는 / 사랑을 나누며 동시에 사랑하지 않는

하루가 시작되고 끝날 때 / 망설임과 잃음 사이에서 / 두 사람은 / 알지 못했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는 / 가장 멀리 있는 두 사람의 거리일 수도 있음을 / 오래전 분리된 혼이 / 두 육체에서 서로를 갈망하고 있음을

삶은 기억한다, 수많은 삶을 / 사랑은 기억한다, 수많은 사랑을 /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 두 사람은 / 자주 같은 순간에 잠이 깨었다 / 그들의 혼이 어디선가 만나고 있으므로 / 그 순간 심장이 뛰었으므로

확실하지 않은 것에 대해 감히 시를 쓸 수는 없다 / 그러나 별의 운명이 정한 대로 / 두 사람은 / 어느 날 서로를 알아볼 것이다 / 이 생 혹은 다음 생에서 /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 서로에게 다가갈 것이다
 
처음 보았지만 오래된 하나됨을 향해 / 한 순간에 겹쳐 있는 영원을 향해 / 둘 사이의 공간을 축복하는 공기를 가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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